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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칼럼
제목 [15.02.11 중부일보] 진보와 보수의 동행
작성자 윤상현의원실입니다
“진보적인 미국도 보수적인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을 위한 백인을 위한 히스패닉을 위한 아시아인을 위한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합중국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입니다.”

2004년 7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존 케리 후보를 위한 버락 오바마의 기조연설 중 일부 내용이다. 전당대회 시작 전 18분간 진행된 이 연설을 통해 버락 오바마는 미국의 정신을 일깨웠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정치운동, 정당, 정치지도자 등을 크게 두 개의 진영으로 구분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좌파와 우파다. 프랑스혁명 당시 제1기 국민회의에서 의장석 오른쪽에 왕당파가, 왼쪽에는 공화파가 주로 앉았던 것에서 유래됐다. 이후 국민공회에서도 왼쪽에는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오른쪽에 온건파인 자롱드당이 앉았다.

일반적으로 좌파는 급진적인 변혁, 우파는 보수적 안정 속의 개혁을 지향한다. 따라서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로 구분된다. 진보적 우파도 있을 수 있고, 보수적 좌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지만 ‘수구꼴통’이나 ‘종북좌파’라는 색깔론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도 안정을 도모할 수 있고 보수도 혁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고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도 조금씩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극좌, 극우로 몰아세우는 흑백논리의 이분법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만연하지만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우파와 좌파는 서로 공유해야 할 영역이 많다. 복지문제에서는 진보적, 가족문제에서는 보수적일 수가 있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 이분법적 시각은 극복해야 할 프레임이다. 우파도 진보적 개념을 적극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반성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또 좌파도 사고나 정책에 있어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분법, 양자택일의 논리에 익숙한 경향과 습성이 있다. 지옥과 천국, 천사와 악마, 정의와 불의, 이익과 손해, 행복과 불행 등 명쾌한 구획 정리와 배타적인 영토화에 쉽게 만족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오해하고 학대하면서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견과 증오에 기반한 적대적 상상력의 결과이자 지성의 빈곤이다. 한 가지 의견만이 옳다고 믿고 가르치고 따르는 사회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인생과 현실은 언제나 불확실하지만, 상호의존성을 기반으로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에 대해 정치적 견해의 차이가 옳고 그름이라는 선악의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좌파와 우파의 차이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과 정치 행위의 선택과 옹호의 문제다.

자신만이 옳다는 독단과 우상을 겸허하게 버릴 때, 새로운 미래와 밝은 운명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함께할 수 있는 열린사회, 서로를 관용하는 사회의 도상에서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한다. 정치인이 하나의 고정된 관점에서만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성숙된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모든 정치인은 탄력적으로 현실에 적응하고, 보다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정치의 스펙트럼이 더 넓고 깊어지도록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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